허무는 인간 영혼의 피 냄새 같은 것이어서, 영혼이 있는 한 허무는 아무리 씻어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인간이 영혼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듯이, 인간은 인생의 허무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 - p10
봄날은 간다
- 사람에게는 한시도 사라지지 않은 선한 마음이 있다고 기대승은 믿는다.
- 약자를 보고 측은해하는 마음(측은지심), 잘못한 것을 두고 부끄러워 하는 마음(수오지심), 욕심내지 않고 양보하는 마음(사양지심), 올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판별하는 마음(시비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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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 공부 할때 배웠던 내용과 비슷하네. -
목(인): 측은지심, 화(예): 사양지심, 토(신): 광명지심, 금(의): 수오지심, 수(지): 시비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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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마음을 버려두고 세상의 허영을 좇는 것은 영원한 것을 버려두고 사라질 것을 좇는 일과 다름없다.
허무 속에서 글을 쓰다
- “잘 놀고 흐뭇했어도, 일이 지나고 보면 문득 슬프고 쓸쓸한 마음이 든다” - 홍세태, 유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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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이런 마음이 든다. 지나간 일들과 이들을 생각해보면 그 때가 아무리 즐겁고 좋았어도, 슬픈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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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 없던 시절, 만남을 기록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러나 글이라고 영원할 것인가. 시간의 덧없음에 대처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해서 개별 인생이 실제로 영생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왕희손의 타산지석
- 왕희손은 자신들이 후대 사람의 모범이 되고자 글을 남기는 게 아니라는 걸 분명히 하기 위해 저 표현을 썼다.
- 훗날 사람들이 자신들의 못난 글을 보고서, 나는 이렇게 멍청한 소리를 하지 말아야지라고 경각심을 갖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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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밌는 역발상이다. 글을 못 쓰는 사람에게 큰 위안이 되기도 한다.
- 이렇게 자신을 이해해줄 독자를 상상하고 글을 쓰는 한, 시간을 뛰어넘어 필자와 독자 사이에 ‘상상의 공동체’가 생겨 난다.
- 이처럼 사람들이 글을 써 남기는 것은 하루살이에 불과한 삶을 견디기 위해 영원을 희구하는 일이다. 훗날 누군가 자기 글을 읽어주기를 내심 바라는 일이다. 불멸을 원하지 않아도, 상상의 공동체를 염두에 두지 않아도, 글을 쓸 이유는 있다.
- 작가 이윤주는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에서 글을 써야 할 또 하나의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엄습하는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 쓸 필요가 있다고. 쓰기 시작하면 불안으로 인해 달구어졌던 편도체는 식고, 전전두엽이 활성화된다고. 쓰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진정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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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의 내용이다. 허무에 대한 책에서 글쓰기에 관한 이렇게 유익한 내용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이 책도 꼭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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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생을 위하여
- 열반에 이르지 않은 사람의 마음에는 파도가 가득하다고 했던가. 마음속 파도가 높아 질식할 것 같을 때, 죽음보다 삶이 자신에게 더 많은 상처를 준다고 느낄 때, 평온해 보이던 사람도 물속으로 자진하여 걸어 들어간다. 그러나 이러한 입수가 반드시 자살의 길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우에하라 고넨, <파도도>
삶은 악보가 아니라 연주다
-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은 목표 달성 전에 갑자기 죽게 된다면 그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 재즈의 핵심은 악보에 집착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순간을 즐기고 궤도를 이탈해가면서 측흥 연주를 얼마나 유연하게 해내느냐에 있다.
- 삶도 소울 재즈라면, 미리 정해둔 목표 따위는 임시로 그어놓은 눈금에 불과하다.
- 관건은 정해둔 목표의 정복이 아니라, 목표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자기 스타일을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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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필 들으면 뻔한 말 같으면서도, 참 매력적인 말이기도 하다. -
삶의 매 순간을 내 스타일대로 즐기는 것. 그것이 허무를 이겨내는 방법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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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퇴행을 즐기는 방법
- P122, 어떻게 퇴행을 즐길 수 있느냐고? 자신이 이미 이룬 것을 새삼 바라는 것이다. 박사 노인은 제발 박사학위가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거다. 그런데 이미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다! 추가로 더 수고를 하지 않아도 학위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얼마나 즐거운가. 기혼자 노인은 아내와 평생을 같이하고 싶어서 아내에게 청혼하는 거다. 제발 나와 결혼해줘,:이 사람이 노망이 났나. 우린 부부잖아.” 이미 결혼했다니! 이미 평생을 같이 했다니! 청혼을 거절당할 두려움을 느낄 필요도 없고, 애써 착을 찾아 헤맬 필요도 없다. 얼마나 즐거운가. 오랜 친구에게 간청하는 거다. 나와 사귀어주게. 친구가 당황하며 대꾸한다. “우린 이미 친구잖아!” 우린 이미 친구였다니! 얼마나 즐거운가. 칼럼 마감을 연장해달라고 신문사에 요청한다. “무슨 소리를 하세요. 칼럼 원고 이미 보내주셨어요.” 이미 원고를 보냈다니! 너무 즐겁다. 이미 이루어진 것을 소원으로 빌기. 그것이 내가 노년에 기대하는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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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들었떤 노년을 슬기롭게 보내는 방법 중 제법 참신한 생각인 것 같다. 다만 이미 이뤄낸게 없다는 생각이 들면 더 비참한 생각이 드는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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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포스 신화
- 노동을 없애는 것이 구원이 아니라 노동의 질을 바꾸는 것이 구원이다. 일로부터 벗어나야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을 즐길 수 있어야 구원이 있다.
- 공부하는 삶이 괴로운가? 공부를 안하는 게 구원이 아니라, 재미있는 공부를 하는 게 구원이다.
-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게 괴로운가? 사람을 안 만나는 게 구원이 아니라, 재미있는 사람을 만나는 게 구원이다.
- 그렇다면 젊었을 때 적성에 안 맞고 재미없는 일을 참아가며 해서 큰돈을 번 뒤, 여생을 여가를 즐기며 느긋하게 살겠다는 계획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 적성에 맞고 재미없는 일이라면, 그저 돈 때문에 해야 하는 노동이라면, 과정 자체가 불행할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결국 돈을 모으지 못해도 불행하지만, 계획대로 큰돈을 벌어 긴 여가를 누리게 되어도 불행하다. 긴 세월 그를 기다려준 것은 정작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긴 여가일 터이므로. 인간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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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럴까. 늙어서 돈이 많으면 매일 매일 새로운 놀이만 찾아다니며 유흥을 즐겨도 허무를 안 느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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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없어도 되는 삶을 위하여
- 내가 산책을 사랑하느 가장 큰 이유는 산책에 목적이 없다는 데 있다. 나는 오랬동안 목적 없는 삶을 원해왔다. 왜냐하면 나는 목적보다는 삶을 원하므로. 목적을 위해 삶을 희생하기 싫으므로. 목적은 결국 삶을 배신하기 마련이므로.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해보자. 대개 기대만큼 기쁘지 않다. 허무가 엄습한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제 뭐 하지? 목적 달성에 실패했다고 해보자. 허무가 엄습한다. 그것 봐, 해내지 못했잖아. 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았지?
- 행복하고 싶어! 많이들 이렇게 노래하지만, 나는 행복조차도 ‘추구’하고 싶지 않다. 추구해서 간신히 행복을 얻으면, 어쩐지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 세상에는 그런 일들이 있다. 가는 대신에 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일. 억지로 가려고 하면 더 안 오는 일. 잠이 안 와요, 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우리가 잠에게 가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억지로 잠들려고 할 수록 잠이 달아나지 않던가. 행복도 그런게 아닐까. 나는 자네에게 가지 않을 테니, 자네가 오도록 하게 행복이여, 자네는 내가 살아가는 동안 부지불식간에 발생하도록 하게, 셔터가 무심코 눌려 찍힌 멋진 사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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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하다. 진심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행복에게 조차 오고 싶으면 와라 라는 태도를 보이는 작가의 태도가 부럽기도 하고 쿨하게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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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적 없는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있다. 내가 너무 지나친 궁핍에 내몰린다면, 생존이 삶의 목적이 되겠지. 그렇게 되지 말기를 기원한다. 내가 너무 타인의 인정에 목마르다면, 타인의 인정을 얻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겠지. 그렇게 되지 말기를 기원한다. 내가 시험에 9수를 한다면, 시험 합격이 삶의 목적이 되겠지. 그렇게 되지 말기를 기원한다.
총평
- 중간중간 등장하는 아재개그 같은 건 영 내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다양한 이야기거리와 아름다운 삽화는 이 책을 충분히 한번쯤 읽어볼 만한 유익한 책으로 만들어준다.
- 작가의 말들을 듣다보면, 치열하고 나름 열심히 살아온 인생의 선배에게 담담하지만 뚝심 있는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나도 이런 지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